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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f. 고명훈, 고치비

운영자

2026.07.29

서촌에서 제주까지

 

고치비 고명훈 셰프가 제주를 이탈리안으로 번역하는 법

 

서촌 한복판에서 제주로 가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비행기표도, 렌터카도 필요 없다. ‘고치비’의 문을 밀고 들어가면 된다. 입구에 적힌 제주어 ‘밉서예’가 첫 번째 안내다. 말 그대로, 미세요.

문 너머에는 일곱 개의 테이블이 있고, 그 위에는 제주 흑돼지와 돌문어, 청귤과 성게가 오른다. 다만 우리가 알던 모습 그대로는 아니다. 제주의 재료들은 고명훈 셰프의 손에서 굽고, 삶고, 소스와 만나며 이탈리안 요리로 번역된다.

제주의 재료가 이탈리아어를 꽤 능숙하게 구사하는 곳. 고치비다.

 

 

고씨네 집에 초대합니다

 

‘고치비’는 제주어로 ‘고씨네 집’이라는 뜻이다. 제주 출신인 고명훈 셰프가 서촌에서 7년째 운영하고 있는 제주 콘셉트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이름처럼 고치비가 지향하는 모습도 거창한 레스토랑보다는 정성껏 차린 집에 가깝다. 일곱 개의 테이블에서 손님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고, 제주 어느 집에 초대받은 것처럼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렇다고 메뉴까지 소박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흑돼지, 청귤, 옥돔, 돌문어와 성게 등 제주의 산과 바다에서 온 재료에 이탈리안 조리법을 더한다. 익숙한 재료를 낯선 방식으로, 낯선 요리를 친근한 맛으로 풀어내는 것이 고치비의 방식이다.

 

“고치비는 제주의 자연과 식재료를 이탈리안 요리라는 언어로 번역하는 공간입니다.”

 

번역에도 여러 방식이 있지만 고치비는 의역보다 직역에 가깝다. 재료를 화려하게 꾸며 원래의 맛을 가리기보다는, 그것이 지닌 고유한 맛을 최대한 정직하게 보여주는 쪽을 택한다.

 

 

베이커리에서 시작해, 나만의 주방까지

 

고명훈 셰프는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시절 대학 특기적성 교육을 통해 처음 베이커리를 접했고, 대학 졸업반에는 제주 중문 롯데호텔에 취업했다.

그곳의 메인 주방에서 요리하는 선배들을 보며 마음이 움직였다. 언젠가 자신의 요리를 만들고, 자신의 이름으로 된 공간을 열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결국 ‘요리를 배우겠다’는 한 가지 마음만 들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렇게 제주를 떠나 배운 요리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제주로 향했다. 다만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신, 제주의 재료를 서울로 불러들였다. 고치비의 접시마다 제주가 등장하는 이유다.

 

셰프가 아닌 날의 그는 로드 사이클을 탄다. 쉬는 날이면 경치 좋은 길을 따라 페달을 밟고, 여행을 가서도 새로운 풍경을 찾아 나선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일과 운동하는 일 모두 그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즐거움이다.

생각해 보면 요리와 라이딩은 조금 닮았다. 목적지만 보고 달릴 수 없고, 지나가는 풍경과 과정까지 온전히 경험해야 한다. 좋은 길도, 좋은 음식도 결국 몸에 기억된다.

 

오일 한 방울과 육수 한 스푼의 사정

 

고치비의 주방에는 절대 양보하지 않는 세 가지가 있다. 좋은 오일, 좋은 식재료 그리고 정성 들여 끓인 육수다.

화려한 플레이팅과 새로운 기술도 중요하지만, 요리의 중심을 잡는 것은 결국 기본이다. 오일 한 방울이 향을 바꾸고, 육수 한 스푼이 접시 전체의 깊이를 결정한다. 그 바탕이 부실하면 아무리 보기 좋게 차려도 요리는 금세 중심을 잃는다.

 

“요리는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을 얼마나 정직하게 끌어내느냐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손이 많이 가더라도 이 세 가지는 줄이거나 건너뛰지 않는다. 손님의 테이블에 올라간 한 접시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다. 고치비의 음식이 재치 있는 조합 속에서도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치비에서 맛보는 제주 한 바퀴

 

고치비를 처음 방문했다면 메뉴 네 가지를 차례로 경험해보는 것이 좋다. 돌문어에서 시작해 흑돼지와 몸국을 지나 비양도 성게에 도착하는 코스다. 서울에 앉아 있지만, 입안은 꽤 바쁘게 제주를 여행한다.

 

첫 번째 정거장, 제주산 돌문어

제주에서 공수한 돌문어를 부드럽게 삶은 뒤 그릴에 굽는다. 삶는 과정에서 질감을 부드럽게 만들고, 그릴에서는 불향과 고소한 풍미를 더한다.

돌문어 특유의 탄력은 남아 있지만 질기지 않고, 표면의 그릴 향이 씹을수록 선명하게 이어진다. 제주 바다에서 시작하는 첫 접시로 제격이다.

 


흑돼지는 알배추 위에서 더 맛있다

제주산 흑돼지 가브리살과 알배추를 함께 낸 메뉴다.

알배추는 팬프라이한 뒤 다시 그릴에 구워 달큰한 맛과 불향을 끌어낸다. 그 위에 흑돼지 가브리살을 올리고, 제주 청귤 드레싱과 알케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로 마무리한다.

흑돼지의 진한 풍미와 알배추의 단맛 사이로 청귤의 산뜻함이 들어오고, 올리브오일이 각 재료의 향을 하나로 연결한다. 제주와 이탈리아가 한 접시에서 만났는데, 서로 통역이 필요 없어 보인다.

 


몸국이 리조또가 된다면

고치비 리조또는 제주 전통 음식인 몸국을 이탈리안 리조또로 재해석한 대표 메뉴다. ‘몸’은 제주어로 모자반을 뜻한다. 여기에 거칠게 구워낸 흑돼지 오겹살을 올려 완성한다.

제주의 향토 음식과 이탈리아의 조리법을 억지로 섞기보다, 두 음식이 공유하는 깊고 따뜻한 맛을 자연스럽게 이어냈다. 고치비가 말하는 ‘제주를 이탈리안으로 번역하는 방식’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접시다.

이쯤 되면 몸국의 변신이라기보다 꽤 성공적인 해외 진출에 가깝다.

 


 

마지막은 비양도 성게알 파스타

성게알 파스타에는 제주 비양도 해녀 삼춘들이 직접 채취한 성게를 사용한다. 산지가 정확하고, 누가 채취했는지까지 알 수 있는 재료다.

제주 성게 특유의 자연스러운 단맛과 농밀한 바다의 풍미가 파스타에 스며든다. 성게의 존재감을 불필요하게 가리지 않고, 재료 자체의 맛이 충분히 드러나도록 완성한 메뉴다.

돌문어와 흑돼지, 몸국을 지나 마지막으로 제주 바다 깊숙한 곳에 도착하는 한 접시다.

 


 

좋은 재료에는 주소와 계절이 있다

 

고명훈 셰프가 생각하는 좋은 식재료에는 출신이 분명하다. 어디에서 왔는지, 누구의 손을 거쳤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제주 흑돼지와 돌문어, 청귤, 옥돔, 성게를 고집하는 것도 단순히 ‘제주산’이라는 이름 때문만은 아니다.

재료가 가장 맛있는 제철을 알고, 산지에서 좋은 상태로 받아 제대로 손질하고 보관하는 것까지가 모두 요리의 일부다. 좋은 산지에서 왔다고 해서 저절로 좋은 접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삶고 굽고 다루는 모든 과정에 다시 사람의 정성이 들어가야 비로소 완성된다.

고치비의 주방에 질 좋은 올리브오일과 제주 흑돼지, 제주 해산물이 늘 자리하는 이유도 같다. 이 세 가지는 식재료인 동시에 고치비가 어떤 요리를 하는 곳인지 보여주는 가장 간결한 소개다.

 

 

음식만 먹고 돌아가기에는 제주가 조금 아깝다

 

고명훈 셰프가 손님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맛있는 이탈리안 요리’만이 아니다. 고치비에 머무는 시간 동안 제주의 문화와 정서까지 함께 경험하기를 바란다.

제주어로 지은 간판부터 입구의 ‘밉서예’, 접시 위의 흑돼지와 청귤, 비양도 해녀 삼춘이 채취한 성게까지. 작은 요소들이 모여 하나의 제주를 만든다.

 

“매장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나가는 순간까지, 고치비에서 보내는 시간 전체가 제주를 경험하는 여정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고치비에서의 식사는 한 끼이면서 짧은 여행이다. 제주의 바다와 땅을 맛보고, 낯선 제주어 하나쯤 배워 돌아가는 여행. 식사를 마친 뒤 다시 문을 열면 서촌이지만, 입안에는 아직 청귤의 산뜻함과 성게의 단맛, 그릴에 구운 흑돼지의 향이 남아 있을 것이다.

제주가 그리워질 때마다 비행기표를 검색할 필요는 없다. 우선 서촌으로 가서, ‘밉서예’.

 

 

GOCHIBI 고치비
제주의 자연과 식재료를 이탈리안 요리의 언어로 풀어내는 서촌의 레스토랑. 제주어로 ‘고씨네 집’을 뜻한다.

처음 방문한다면
제주산 돌문어 → 흑돼지 가브리살과 알배추 → 고치비 리조또 → 성게알 파스타

 
네이버 플레이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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